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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325

가난한 연인들의 사랑애기

조회 수 1484 추천 수 1 2006.03.13 04:43:29




시대 배경은 70년대 말입니다..



대학 2학년 무렵, 한 남자를 만났다..



외로움에 지쳐서 누군가 한번만 안아준다면 그에게 내 인생 전부를



내주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누군가 내게 다가와



주었으면.. 그래서 그와 함께 지치고 힘든 삶이라도 서로 끌어안고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 외롭고 춥던 시절에 성규..그가 내게 왔었다..



도서관 휴게실에서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고 있을 때..



그는 당당하게 다가와 태연히 동전을 요구했었다..



꾸어 달라지도 않았다..



" 커피값 있습니까..? "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 하면서도 내밀고 있는 그의 손바닥 위에



동전을 올려놓고 말았던 것은 너무도 당당한 그의 태도 때문이었다..



꿔준 돈이라도 받은 양 돈을 챙겨 자판기 앞으로 다가서던 그가



다시 물었다..



" 담배는 없습니까..? "



이 자식은 내가 여잔줄 모르나..



돈이 없으면 끊든지..어디다 구걸이야.. 내가 호구로 보여..?



국방색 잠바를 입고 있었지만 예비역같이 보이진 않는 남자..



검은 빛은 아니지만 보기 좋을 정도로 그을려 있는 얼굴빛..



그리고 그 뒤 중키에 비쩍마른 그 남자와 하루에도 몇번씩



학교 안에서 부딪쳤다..



그 남자는 우리가 이렇게 자주 마주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조바심치며 지내던 어느날이었던가.. 담배가게 앞을 지나다 문득



그남자가 처음 했던 말을 떠올리곤 담배한갑을 사서 가방속에 넣어



두었다.. 실없이 웃으며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그가 나에게 다시 담배를 요구할 기회조차 없을텐데..



그런데도 담배는 언제나 가방속에 있었다..



혹시 알지도 몰라.. 그렇게 자주 마주치는 얼굴 정도는 알고 있을거야..



누군가를 가슴에 품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외로움은 한결 덜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지.. 문리대 앞 잔디가 푸르다 못해 파란빛을 띠던



계절이었다.. 그 남자가 문리대 계단 위에서 늘씬하고 귀여운 인상의



여학생과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온통 이빨을 드러내고 흐드러지게 웃는



모습을 보고 묘한 배반감에 돌아서던 날이.. 짧은 스커트 밑으로 쭉 뻗어



내려왔던 그녀의 다리가 몹시도 언짢았다.. 이유도 없이 그 자식이



괘씸해졌었다..



>>이해를 돕기위한 한마디.. 그녀는 다리가 불편합니다..



그날 자취방으로 돌아와서 찾아올 사람도 없는데 방문을 걸어 잠그곤



가방속에 넣고 다녔던 담배를 꺼내 밤새 몽땅 피워 버렸다..



골초가 되어버린 계기의 밤이었다..



또다시 부딪치는 그가 부담스러워졌다.. 도서관에서,문리대 복도에서,



교정에서 자꾸만 나타나는 그를 애써 외면하면서 누군가를 가슴에 품는



다는 것이 그렇지 않았던 날들보다 힘들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쁜 자식.. 할일이 그렇게 없나..매일 내 눈앞에만 나타나고..



우울한 날들이 계속됐다.. 몰래 가르치던 고교생 녀석이 시험을 개떡



같이 보아 온 덕분에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됐던 날.. 도서관에 있기도



그렇고 해서 대운동장 계단에 우두커니 앉아 신입생인 듯한 남자 아이



들의 테니스 경기를 구경하고 있을 때.. 그가 걸어왔다..



"커피 사줄까요..? 나 오늘은 부자거든요.."



몇 년 사귄 여자에게라도 말하듯 쉽게 던져 온 그의 제안에.. 문리대



계단위에서 함께 웃던 여학생도 잊어버린 채 졸래졸래 그를 따라 일어



서고 말았다..



오늘은 기분이 더러운 날이니까.. 이 치한테 바가지나 씌우는 거야..



내 주제에 어디 이런 기회가 흔하게 와 주겠어..?



그렇게 그 남자를 쫓아가는 자신에게 그럴싸한 정당성을 만들어 붙이



고는 싫지 않은 제안에 관심이 없는 듯 시큰둥해 하며 그를 따라갔다..



그는 학교 앞 카페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쫓아가고 있는지 안중에도 없이 성큼성큼 앞서 들어가는 그가 불쾌했지



만 돌아서지도 못했다..



이를 앙다물고 그 앞에 앉자 그는 커피 두잔을 시키고 멀뚱히 의자며



탁자를 바라봤다.. 커피라 날라져 오자 그제서야 내가 앞에 앉아 있었



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한 사람처럼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이쪽을



건너다 보았다..



얼굴 처음 보나.. 수도 없이 부딪ダ만庸 .



저도 나한테 커피값을 강탈해 간 기억을 가지고 있으니까 느닷없이



커피니 뭐니 한 거 아니겠어..?



" 우리 참 많이도 만났죠..? 그거 우연이라고 생각해요..? "



" 우연이 아니면요..? "



" 서운하구만..하긴 내가 꽤 고단수를 부렸으니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그 많은 학생들 중에 유독 우리만



그렇게 자주 부딪치는게..그렇게 보이진 않는데 머리가 나쁜 편인가 보죠..? "



커피가 식는 것도 잊어버리고 멍하니 그를 보고만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만남이 그의 고단수에 의한 것이었단 말인가..



" 민설주 맞죠? "



어쭈..이름까지 알고 있어..



" 그래요.. "



" 김혁진이 내 고등학교 후배예요.. 같은 영문과죠..? "



혁진이 선배였단 말야..? 이 머리 좋은 척하는 고단수가..?



그러나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사람은 날 알고 있었어.. 좋아보이지도 않는 머리로 고단수를 부려



우연한 만남을 만들어 낼 정도로 날.. 자신에게 눈길을 주고 있는



날 의식했던 건지도 몰라..



" 난 전성규고.. 정외과 3학년인데 학년에 비해서 나이는 많아요..



두번이나 휴학을 했거든요.. "



" 그런데 왜 저에게 커피까지 사시겠다는 거죠? "



" 너무 오래 밀고 당기면 재미없잖아요.. "



밀고 당겨..? 저하고 언제 줄다리기 시합이라도 했나..?



" 도서관에서 자리잡고 살길래 저 여자도 되게 할 일이 없나 보다



유심히 봤었죠.. 정말 그렇게 할 일이 없어요..? 도서관 외엔 갈



데가 없어요..? "



" 그래요.. "



그가 큰소리로 웃어 젖혔다..



" 그런 거 같았어요.. 솔직해서 좋은데요.. 그래도 6시면 딱 일어나



서 가던데.. 숨겨둔 애인이라도 있어요? "



" 숨겨둔 애인은 없고 몰래 가르쳐야하는 여드름쟁이는 있었어요.."



아~..하고 그가 감탄사를 토해냈다..



" 댁도 부잔 아닌 모양이죠? "



" 부자는 커녕 지지리도 가난해요.. "



음..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거지..?



이 남자한테 이런 말을 할 필욘 없는데..



그가 갑자기 나의 손을 잡고 악수를 하듯 흔들어댔다..



" 반갑군..난 지지리도 가난한 사람들을 좋아하거든.. "



언제 봤다고 반말지거리야..? 하긴 많이도 봤었지..





그렇게 만난 그와 사랑이란 걸 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인으로



인해 가슴이 설레어 보기도 하고.. 그와의 만남을 위해 많지도 않은



옷들을 방안에 늘어놓고 평소엔 보지도 않던 거울앞에 서서 이것도



대보고 저것도 대보고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겨울에도 싸구려 스킨



로션 하나로 버텼는데 그에게 부시시한 얼굴을 보이기 싫어 하루 일당



을 모두 털어 레몬향기가 나는 로션을 사기도 했다.. 그리고 가난한



연인들이 할 수 있는 짓은 모두 해보았다..



풀빵 두개로 저녁을 때우고 허기가 지는 것도 모르고 플라타너스



나무가 늘어선 산책로를 밤이 깊도록 걸어 다녔다.. 비가 오는 날에도



어딘가에 들어가서 차 한 잔 마실 돈이 없어서 남의 집 처마밑에



쪼그리고 앉아 수다를 떨다가 방 주인에게 야단을 맞기도 했다..



그즈음 난 처음으로 간절히 부자가 되고 싶었다.. 그에게 맛있는 우동



을 사줄 수 있고.. 매일 입고 다니는 국방색 잠바 대신에 빛깔 고운



셔츠를 입힐 수 있고.. 보고 싶어하는 책들을 마음놓고 읽힐 수 있는



여유를 난 소망했었다.. 그러나 사랑이 다가왔다는 그 축복 앞에



맨몸으로 선 내 자신이 초라해지면 한없이 서글퍼지기도 했지만..



그때의 그 가난을 미워하지는 않았다.. 그와의 만남이 서로의 가난을



확인한 순간의 동질감으로부터 출발했다고 생각했기에..



그러나 그와 함께 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 일이 생겼다..



2학기 중간시험이 끝나고 며칠째 학교에서 그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혁진에게 물어 봤지만 그도 나만큼이나 그의 생활을 모르고 있었다..



과사무실에 가서 겨우 그가 먹고 잔다는 독서실 전화번호를 얻어 전화를 걸어



그가 앓아누웠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가슴을 조이며 독서실을 찾아갔다..



서울시내 독서실중에 그토록 형편없는 시설을 갖춘 독서실이 있을 줄이야..



주인남자의 자랑처럼 독서실은 공부외엔 어떤 짓도 하지 못하게 만들어놓은



완벽한 감옥이었다.. 주인 남자는 그를 빨리 만나고 싶은 나의 기분은 무시



한 채 이렇게 싼 곳은 없을 거라며 돼먹지 않은 자랑을 계속 늘어놓았다..



겨우 주인남자가 안내해 준 공부방으로 들어섰을 때..



불빛이라곤 없는 실내에서 발견한 꼴이라니.. 노란 장판은 군데군데 벗겨져



시커먼 시멘트 바닥을 드러내고..싸구려 합판으로 만든 책상은 성한 것 하나



없이 모두가 삐딱한 모양으로 이곳이 얼마나 가난한 사람들의 학구열을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곳인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 좁은 방에 웬 책상은 그리도 많은지..



미로같은 책상사이를 돌아 방 끄트머리에 더러운 이불을 덮고 누워있는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난 말할 수 없는 서글픔에 짓눌려 그를 깨울 생각조차



잊어버렸다.. 벌써 꽤 쌀쌀해진 날씬데도 온기라곤 모든 촉각을 곤두세워도



감지되지 않았다..



" 아픈 사람이 있는데 불도 안 때세요..? "



욕이라도 하고 싶은 걸 겨우 참고 최대한도로 부드럽게 주인 남자에게 항의를



하자 그는 별 싱거운 소리 다 듣는다는 표정으로 돌아서 나가며 투덜댔다..



" 우린 뭐 흙 파서 장사하나..? "



그는 사람이 다가온 것도 모르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안본사이 가뜩이나 여윈 얼굴은 형편없이 메말라 감기로 앓아 누웠다는



주인남자의 말이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까칠한 턱..식은 땀을 흘렸는지 이마에



엉켜있는 머리칼..울컥 울음이 솟구쳤다..



" 이봐요! "



내 부름에 그가 겨우 눈을 떴다..



" 어~웬일이야.. 어떻게 찾았어..? "



땀이 그의 이마위로 송글송글 솟아오르고 있었다..



" 많이 아파요? "



" 찾기 힘들었을텐데..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닌 모양이군.. "



" 지금 헛소리하는 걸 보니 아프긴 아픈 모양이군요..약은 먹었어여? "



" 젊은 놈이 약은.. 괜찮아.. 이렇게 이불쓰고 땀이나 쭉 빼면 나을거야.. "



" 젊은 놈은 약도 안 먹어요? "



주머니에 있는 돈을 모두 털어 약과 먹을 것을 사왔다..



싫다는 그를 일으켜 약을 먹이면서 왜 우리는 이렇게 가난할까 하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 지지리도 가난한 애가 오늘 무리했다.. "



" 가난하면 튼튼하기라도 해야 하는 거예요.. "



약을 먹고 벽에 기대 앉았던 그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웃옷을 걸쳤다..



" 일어나..데려다 줄께.. "



" 제정신이 아닌 건 확실하군요.. 그몸으로 배웅까지 하겠다는 거예요?



배웅 받은 걸로 할테니 그냥 누워 있어요.. "



그러나 기어코 그는 나의 자취방이 있는 동네앞까지 데려다 주고야 돌아섰다..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참고 참았던 눈물이 주책없이 떨어졌다..



" 독서실에 내는 돈 나한테 내요..내가 잠자리 마련해 줄테니까.. "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겨났을까.. 축 처져 돌아가는 모습을 다신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머리를 굴려 그와 함께 살 방법을 궁리해 냈다..



처녀가 남자와 산다는 주위의 수근거림 따위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아파 누웠어도 약하나 사다 줄 사람이 없다는 서글픔을 그에게 주지 않을 수만



있다면..나는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다..자취방 앞 어두운 골목에서 어둠을



핑계로 용기를 내.. 같이 살자는 말을 쉽게도 뱉어 버렸다..



" 거저는 안되고 반반 부담해요.. 그럼 온돌방에서 재워줄께요.. "



그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보았다..



" 이 여자가 겁도 없네.. 넌 지금 남자한테 같이 살자는 말을 방 빌려주는



포주처럼 하고 있어.. "



" 그랬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그게 훨씬 낫겠어요..생활비도 줄이고 "



" 생활비 줄이자고 같이 살자고 해..? "



" 안 돼요..? "



그가 오랫동안 나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머리위로 밤하늘에 박힌 별들이 몰래 히죽이고 있었다..



" 너 정말 나랑 살아도 후회 없겠니..? "



순진한 꼬마처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난 별로 잘난 놈이 아냐.. "



" 알아요.. 그러니까 내가 데리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죠.. "



그가 조용히 다가왔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자신의 입술을 나의 입술위로 포개 왔다..



그의 입술에서 덜 익은 사과냄새가 풍겨왔다..



그의 입술에서 나의 입술을 떼어내고 어색함에 픽 하고 웃어 버렸다..



" 난 지금 태어나서 처음 키스를 한 거예요.. 그런데 상상보단 별론데요.. "



" 이 여자가..? 무드도 없는 여자한테 코 꿰서 살아야하는 내인생도 뻔하다 "



그렇게 해서 같이 살게된 그와의 1년은 가난했지만 외롭진 않았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학교도 다녔고.. 굶지도 않았다..



짜투리 영문 번역을 하면서 조잡하고 음침한 문구를 보며 둘이 킥킥거릴 만큼



우리는 가난하다는 서러움에 젊음을 굴복시키지 않았다..



함께 산다는 것.. 아침에 일어나 옆을 더듬으면 낯익은 살갗이 만져지고..



그 감촉이 애틋해서 살며시 눈을 뜨면 사랑하는 이의 잠든 얼굴이 있는



평화로운 아침.. 나는 운명을 주관하는 신에게 진정으로 감사하는 기도를



드리고 싶었다.. 그것은 내 인생에 처음으로 날아든 행운이며 기적이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리라는 기대조차 없이 살아온 나에게 그는 기적처럼



다가온 행운이었다..



추운 겨울 날 밤.. 번역료를 받아 호기롭게 커피 한통을 사가지고 돌아와서



타 마시던 그 커피의 감미로운 향기를 나는 결코 잊지 못하리라..



그 밤.. 한손에 커피잔을 들고 다른 손으로 책을 들고 앉아 있던 그를 바라보다



문득 내가 가진 이 평화로운 밤의 행복이 믿어지지 않아서 그에게 다가가 물끄러미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이사람은 내게 남아 줄 것인가..



시간이 흘러 서로에게 조금은 무심해져도 오늘 이 밤의 추억을 기분좋게 되새기며



함께 살아온 날들이 행복이었다고 말해 줄 것인가..



" 왜 사람 얼굴을 그렇게 들여다봐? "



" 부탁이 있어요.. "



그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 들어 줄 수 있는 것만 해.. 비싼 걸 사달라고 하면 때려줄거야..



서방님을 비참하게 만들면 맞아야하는 거란 걸 똑똑히 가르쳐 줄테니까.. "



" 비싼 건 아니에요.. "



커피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여전히 시선은 책에 못박고 그가 끄덕였다..



" 좋아..말해 봐.. "



" 나보다 먼저 죽으면 안돼요.. "



사람이란 입으로 운명을 만드는 것일까..



그가 책에서 눈길을 거두고 오랫동안 자신을 쳐다보는 나와 눈을 맞췄다..



그의 눈에 촉촉한 물기가 어려왔다.. 그이 손이 나의 얼굴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 바보야.. 그런 걸 어떻게 약속할 수 있니.. 내가 그러고 싶어도 안



될 수도 있는 일인걸.. "



내 얼굴을 쓰다듬는 그의 손을 가져다 입술에 대었다..



" 그래도 약속해요.. 먼저 죽지 않겠다고.. 난 혼자 남는 건 싫어요..



처음부터 같이 살지 않았다면 모르지만 같이 살다 먼저가면 견딜 수



없을 거예요.. 그건 상상만으로도 너무 참혹한 걸요.. "



그가 나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에다 끌어다 묻으며 조용히 읊조리듯 말했다..



" 그건 약속할께..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거야..



네가 늙고 병들어도.. 네가 노망을 부려도.. 할망구가 돼도 오늘처럼



널 이뻐할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마.. 자다가도 니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걸 알아.. 왜 그러는지도 알아.. 하지만 걱정하지마..



이 세상에서 날 오로지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야.. 내가 어떻게 널



떠나겠니.. 나때문에 골초가 된 널.. "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 내곁에 있겠다던 그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 살아있는 동안 네 곁을 떠나는 건 지금뿐이야.. "



그렇게 말하며 씩씩하게 군대로 향했던 그는 허무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었다..



입대한지 4개월만에 수류탄 폭발사고로 죽은 그를 향해 나는 내가 가진



모든 증오를 동원해 분노를 터트렸다..



나쁜 자식.. 나보다 먼저 죽지 않겠다고 약속했었으면 좋았잖아..



그 약속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신은 죽음의 대열에서 너를 제외시켜 주었을텐데..



4학년 봄이었다..



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면서 오열하는 내게 혁진이 말했었다..



" 네가 이래도 성규형은 돌아오지 않아.. "



정말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목이 쉬도록 울어도..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쓰러져도..가난한 농부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단 한순간도 풍요를 누려보지



못했던 그는 우리 곁을 떠나갔다..



그의 기억들을 더듬으며 보냈던 그 많은 시간들을 그는 모르리라..차가운



땅속에 누워 이 세상에 남아 자신을 그리워하는 여자의 절망을 그는 잊어야



했으리라..돌아올 수 없기에..



그 한사람을 얻는다면 세상의 어떤 고통도 달게 받겠다고 수없이 다짐했던



나의 사랑은 그와 살기 전에 겪었던 외로움과는 비교도 안될 무게의 고독을



안겨주고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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