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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세계대전의 전투들...[3] 스탈린 그라드...

조회 수 861 추천 수 0 2007.02.16 21:45:00
천수빈 URL 복사하기 - 


1.스탈린그라드는 포기한다.

스탈린그라드가 아직 포위되어 있을때부터 시작입니다.

1942년 크리스마스,노보체르카스크의 독일군사령부에서 지도앞에 모여 있는 폰 만슈타인 원수와 참모들은 매우 침울해 있었다.

소련군최고사령부가 단지 스탈린그라드의 일개군전멸이 아닌 A집단군,B집단군,돈집단군으로 이루어진

100만명에 달하는 독일남부군전체의 전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머리속은 이제부터 소련군의 대공세를 어떻게 막을 수 있으며

돈강과 도네츠강사이의 공백을 메울수 있는가로 가득 차 있었다.
이미 소련의 제24전차군은 이탈리아 8군의 저항을 가볍게 뚫고 계속 전진하여

12월 23일에는 스탈린그라드에 보급및 비행전진 기지역활을 하는 타친스카야를 앞에 두고 있었다.

도망치기 바쁜 이탈리아전선을 5일만에 150마일이나 돌파하였던 것이다.
"내일이 크리스마스이니 독일놈들이 방심하는 틈을 노리자.공격은 크리스마스자정이다."
이 계획은 대성공이었다..제 13항공함대는 그 위험을 알고 있었으나

스탈린그라드전선의 지원을 위해 주요물자를 소개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었다.

단지 88밀리포1문,20밀리대공포 6문 이 전부 인 이 사단은 1개 전차군의 공격을 정면으로 맞서야 했다.

다행히도 보유하고 있던 귀중한 180기중 대부분이 이륙하여 124기가 다른 비행장에 안착했다.

호트의 스탈린그라드 구원군을 지원하는 요충지인 치르의 배후가 위험해졌고

소련 제 1방면군의 선봉인 바다노프가 남부군의 목줄을 조이고 있었다.

타친스카야에서 로스토프까지의 80마일을 돌파하여

코카서스의 A집단군의과 연결되는 고리를 끊는다면

제 4기갑군을 포함한 80만명이 포위에 갖히게 되는 것이었다.
이제 만슈타인이 믿을만한 것은 자신의 경험과 호트,홀리트,프레터-피코와 같은 맹장들이었다

타친스카야를 구하기 위하여 만슈타인은 스탈린그라드를 구원할 마지막 전력이자

가장 정예인 호트의 제 6기갑사단을 이동시켰다.

바다노프에게 일격을 가하지 않고서는 호트의 상황도 위험하게 된다.

제 15기갑연대는 겨우 25대의 장갑차량밖에는 없었으나

장갑척탄병,돌격공병,대전차포등을 동원하여 65대의 소련전차를 격파하였고

제 336보병사단은 5일간 92대의 전차를 격파하였다.

이성공덕분으로 만슈타인은 제1기갑사단을 밤새 이동시켜 제 6기갑사단과 함께 바다노프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제6기갑사단의 선두파견대가 타친스카야의 북부지역을 탈환함으로써

바다노프의 기갑군은 오히려 포위망에 갇히게 되었고 당황한 바투틴은 자신이 가진 2개의 기계화군단과 2개의 저격사단을 증파했으나

소련군역시 스탈린그라드에 대부분의 전력이 묶인 탓에 예비병력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소련 제 24전차군단은 불타는 타친스카야에서 전멸하고 만다.

바투틴이 독일군을 흉내내시도해본 전격전은 실패로 돌아갔던 것이다.
그러나 같은 전략에서는 독일전차지휘관을 당해낼수 없다고 해도 분명 소련군은 달라졌다.

기동력을 바탕으로 독일군의 배후를 포위된 후에도 끝까지 저항을 했다.

그러나 아직은 값비싼 수어이 몇번 더 남아 있게 된다.
12월 31일 소련 제 25전차군단이 이탈리아 8군의 가벼운 저항을 오판하고 정찰대의 파견도 없이 무모하게 진격하게 된다.

그들은 홀리트파견군의 배후를 치기 위하여 비스트라야강을 건너려 했으나

독일제6기갑사단의 초소가 이들의 움직임을 먼저 포착했다.

리우스장군은 즉시 야간 전투를 감행하기로 결정하고 대전차로를 배치하였다.

제 25전차군단은 대전차포와 중장갑차량의 포격을 받고도 계속 무모하게 전차를 밀어넣었다.

T34의 장갑을 믿고 독일전차와 충돌하여 나아가려 했지만 4호전차도 우수한 기동력을 과시했다.
소련전차병의 미숙함은 차분한 독일전차지휘관을 당해내지 못했다.

전날밤 비스트라야강을 건넜던 90대의 전차는 모두 격파당했고 25전차군단은 전멸했다.

제 6기갑사단은 23대의 장갑차량이 파손되었으나 대부분 회수하여 다시 사용할 수 있었다.

돈집단군 북쪽소련기갑군의 공세가 실패함에 따라 로스토프에 대한 위협은 일단 사라졌다.

소련 제 6군및 제 1방면군의 진격 역시 프레터-피코 파견군이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제 7기갑사단과 제 19기갑사단의 반격으로 무려 20배나 많은 적을 막아낸 것이다.



2.로스토프로 누가 먼저

한 편 돈강과 마이어스강사이에 있는 호트제 4기갑군은 계속 위험한 상태에 있었으나  

제 5SS뷔킹사단은 이동중에 있었고 히틀러는 엘리스타에 위치하고 있었던 제 16장갑척탄병사단의 지원을 여전히 거부했다.

호트는 공세에 나선 소련군을 최대한 괴롭히며 전선을 잘 지탱해 주었다.

12월말 일선지휘관들의 계속된 요청에 설득당한 히틀러는 결국 코카서스지역에서의 철군을 승인하였다.
이순간 홀리트와 호트사이의 넓은 공백을 노리고 옐레멘코의 제2방면군과 제 51군이 로스토프로 진격했다.

전세계의 이목이 스탈린그라드로 집중되어 있을 때 약3배규모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폰클라이스트의 A집단군은 소련군이 차단하기 전에 앞서 로스토프로 입성해야 했다.
1943년 1월 17일 한 참모가 만슈타인의 방에 뛰어 들었다.
"각하,소련전차들이 돈강을 건넜습니다.코사크부대는 전멸했고 우리까지 35키로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만슈타인은 혼란을 극히 싫어하는 냉철한 전략가였다.

"이근처를 돌아보면 수리중인 전차들이 있을 걸세.

굴러갈수 있는 것은 전부 끌고 나가 소련전차들을 박살내!.

필요없는 사령부병사들도 데리고 나가!.우리는 이곳을 지켜야 한다."

왜 이순간 옐레멘코는 전차들이 로스토프로 맹진격하도록 하지 않았을까?

옐레멘코가 전차군단을 로스토프로 우겨 넣었다면 남부군은 동강이 나 동부전선은 더 일찍 끝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바다노프의 제24전차군단의 망령이 계속 따라다녔기 때문이 아닐까.
스탈린 그라드 역전의 용사인 말리노브스키의 전차군단과 같은 타격대도 이제 완전히 지쳐 버렸다.

보급선은 연장되었고 그 막강한 전투력도 소진되어 가고 있었다.

말리노브스키,옐레멘코 심지어 후루시초프까지도 이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모스크바의 스탈린만이 이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히틀러가 모든것을 사수하라는 편집증 환자였다면 스탈린은 재빨리 배후를 끊어 대군을 일거에 섬며하려는 조급증환자였다.

비록 증세는 히틀러가 더 심했지만 .
"제 2방면군은 7일 저녁까지 도네츠강에 도달한다.제 3전차군은 돈강의 서쪽을 도강하고 제 98저격사단은 그 침투점을 넓힌다.제 2방면 기계화군단은......"

이것이 모스크바의 대답이었다.

"진격한다,진격할뿐이야!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적은 루마니아나 이탈리아군이 아닌 독일군이란 말이야!"
명령만으로 전투를 이기는 것은 아니다.

20일이 되어서야 옐레멘코의 선봉대가 마니치강을 건너 바타이스크를 향해 진격했다.

8대의 T34,3대의 T70,9대의 장갑차에 나눠탄 200명 이 전부인 파견대는 기습에 성공하고 이 뒤를 제 51군이 따랐다.

독일은 3개군이 단절될 위험에 처했다.겨우 30키로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엘리스타에서 철수하고 있는 제 16기계화보병사단의 제 116전차대대와 제 503티이거대대로 도강을 저지해야 했다.

수개월간 이사단은 제1기갑군과 제 4기갑군간의 300키로의 공백을 훌륭히 지켜내 역전의 사단이었다.

그러나 소련 제28군은 제 16기계화보병사단을 앞지르게 되었고 동시에 포틀레타르스카야와 살스크사이를 제 51군이 공격을 하였다.

제 2방면군은 북쪽에서 스포르니이를 향해 진격하여 소련 코카서스전선과 연결될 계획이었다.

독일A집단군을 쪼개어 제 1기갑군이 로스토프로 향하지 못하게 막고 제 17기갑군을 포위한다는 계획이었다.

3.남부군의 위기

제 16기계화사단의 게하르트 쿤트 슈베린 소장에게는 용기뿐 아니라 운도 있었다.

그는 소련군의 역습계획과 지도를 가진 소련의 참모장교를 생포하였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모든 병력을 동원하여 스포르니이이로 향했다.

소련의 게라시멘코장군은 계획대로 진행을 하였으나 슈베린이라는 변수를 모르고 있었다.모사는 제천이라고 했던가.

1월 15일 오전 게하르트태프의 전차중대는 북서쪽에서 소련의 전략요충지를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강을 건넌 소련군의 배후에 위치하게 되었고 이들은 소련군이 점령한 마을로 진격하였다.

1대의 T34와 4대의 76.2미리 대전차포를 격파하였고 뒤늦게 달려온 1대의 T34를 더 격파했다.

좌익에서는 쿤의 제 3중대와 한스분젤이 전세를 역전시켰다.

분젤의 3호전차는 대전차포를 차례로 없애 가며 스포르니이이댐까지 진격했다.

그는 1942년에도 이장소를 공격한 적이 있었으나 간발의 차이로 댐이 폭파되는 것을 바라보아야 했다.
남쪽에서는 클라피히중위가 사모두로브카를 공격하였다.

여기는 소련 제2자동차화 저격여단이 교두보를 확보하고 있는 곳으로 이곳에서 또 한차례 귀중한 정보를 얻어 냈다.

포로가 된 여단의 참모에게서 마니치스카야에 위치한 소련군이 23일 공격을 개시하여

기습으로 바타이스크다리를 점령할 것이라는 귀중한 정보를 얻었던 것이다.

클라피히중위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고 사모두로브카를 사수하기로 결정했다.

이 마을을 사수할 경우 소련 교두보의 측면을 위협하게 되는 것이다.로트미스트로프는 이 마을을 그냥두고 갈 수 없었고

결국에는 클라피히와 교전을 벌이게 되었다.

클라피히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고 이 덕분에 만슈타인의 제11기갑사단과 제16기계화병사단은 마니치스카야의 소련군에게

역습을 가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1월 22일 발크장군의 제 11기갑사단이 돈강을 건너 로스토프로 이동하였다.발크의 선봉대가 예고로프 대령의 선발대를 공격했다.

예고로프는 5대의 T34와 T70을 잃고 후퇴하였다.소련 선발대가 붕괴된 것이다.

23일 제 11기갑사단은 요충지인 마니치스카야를 공격했다.


슈베린은 제116전차대대와 제 156기계화보병연대로 이곳을 공격했다.

그러나 이 마을 은 전차들 이 잘 엄폐되어 있었고 곳곳에 대전차 장애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조심해! 대전차 장애물이다." 대대장의 이어폰이 울렸다.

그러나 이미 그들은 전차호에 빠져 대전차포의 집중사격을 받았다.

2대의 4호전차로 20여대의 엄폐된 T34전차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테페의 전차가 파괴되고 기터만의 전차도 불타 올랐다.발크는 적을 속이기로 결정했다.

25일 오전 가능한 모든화력을 북쪽에 집중시켰고 정찰차량과 보병수송차량의 기관총에 일부러 예광탄을 사용하여 이곳으로 적의 주의를 끌었다.

소련 여단장은 이 유인에 속아 엄폐된 전차들을 북쪽으로 황급이 이동시켰다.

이 순간 발크는 모든 화력을 남쪽으로 이동시키며 "전차 앞으로!" 를 외쳤다.

소련전차의 배후를 제 3대대,제 15전차연대가 공격하여 전멸시켰다.

독일군의 피해는 1명사망에 14명의 부상자 인 반면에 소련군은 마니히스카야에서만 20대의 전차와 600명이상의병력을 잃었다.
다음날 로트미츠로프장군은 제 2방면군 사령관에게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보냈다.

『지금당장은 더이상의 작전수행이 불가능함』

소련군 역시 전력이 크게 감소하였다.

제 5기계화 군단은 2200명,7대의 전차,7문의 대전차포로 줄어들었고

제 2방면군전체는 단지 29대의 전차와 11문의 대전차포를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이로써 로스토프에서 코카서스통로는 유지되었고

테레크에서 돈강으로 후퇴한 제1기갑군이 투입되었다

5.제 2차하르코프공방전

드디어 하르코프지역에 대한 소련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아직까지 만슈타인 휘하에 들어가지 않은 란츠파견군에 하르코프를 사수하라는 엄명이 떨어졌다.

적2개군에게 포위된 하르코프를 사수하라는 희망없는 임무는 폴 하우저 장군이 맡게 되었다.

만슈타인은 히틀러에게 하르코프사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습이라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만슈타인으 해임시까지 계속되는 전략가의 논리와 히틀러의 편집증의 대결이 시작되었으나

오히려 히틀러는 최정예 제 1SS[아돌프히틀러]사단과

2SS[다스라이히]사단까지 하르코프에 투입시켰다.

폴 하우저 장군은 상식적이고 전략적 기술이 있으며

상관에 맞서는(?)배짱이 있는 군인으로 스탈린그라드의 바보들과는 달랐다.ㅡㅡ;

2월 14일 포위망은 완성되었고 소련군 전차들이 도시외곽방어망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시내에서는 시민군이 봉기를 시작했으나 모든 병력은 전선에 투입되었기

때문에 시내 곳곳에서 독일 후방에 대한 공격이 거세어졌다.

약속했던 제320보병사단은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다.

마자막 예비병력까지 투입한 하우저는 란츠에게 후퇴를 요청했으나

히틀러의 명령을 받은 란츠는 사수해야 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정오까지 후퇴허가를 내주기 바람.하우저"
"총통의 명령에 따라 기갑군은 현 위치에서 최후의 일인까지 사수한다.란츠"
"포위망을 피하고 물자를 구하기 위해 ,13시 우디지역외곽으로 후퇴한다는 명령을 내릴 것임"

15일 저녁 소련군의 시내진입이 다스라이히 사단의 전차파견대에 의해 무산되었지만 더 이상 버틸수는 없었다.

하우저는 또 다른 스탈린 그라드를 피하기 위해 총통의 명령을 무시하고 남서쪽으로 돌파를 감행했다.

전차가 척탄병의 전방을 청소하고 야포,대공포,돌격공병들이 측면을 엄호했다.

24시간이후 국방군의 최정예 [그로스 도이칠란드]사단이

소련군의 추격을 뿌리치며 빨치산이 내건 븕은 기가 펄럭이는 광장을 거쳐 불타는 하르코프를 탈출했다.


히틀러는 광분하였으나 하우저는 만슈타인에게 귀중한 최정예3개 기갑사단을 안겨주었고

하르코프의 함락은 스탈린의 착각을 더욱 굳혀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스탈린의 생각에 하르코프의 승리는 분명 기쁜 일이었으나

히틀러가 이렇게 쉽게 물러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없는 것이니 남은 것은 단 하나,

독일군이 정말로 붕괴되고 있는 것이라고 단정하였다.

이러한 소련수뇌부의 오판은 소련군의 각전선에 그대로 미쳤다.

2개저격군단,2개전차군단,1개기계화군단으로 구성된

소련 제6군의 선봉대 전차150대가 드니에프르강을 향해 진격했고

좌익에서는 4개전차군단,2개독립기갑군여단,3개저격사단,1개스키여단으로

구성된 포포프의 기갑군이 홀리트파견군의 배후인 아조프해를 향해 진격해 나아갔다.

"최고의 행운이군,아주 잘 되었어."


만슈타인은 크레믈린의 성급한 진격을 보고받고 참모들에게 빙긋이 웃었다.

2월 17일 당황한 히틀러가 만슈타인에게 직접 날아왔다.

만슈타인은 침착하게 상황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보고했다.


"미우스강은 어떠한가?"


"홀리트파견군은 미우스강에 걸쳐 전선을 구축하고 소련3개군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으니 첫 단추부터 스탈린의 예상을 빗나가게 하고 있습니다."

소련 제 4기계화 군단은 미우스강 중앙을 건넜으나  

제 16기계화보병사단과 제 23기갑사단의 역습으로 마트예베프와 쿠르강남부에서 포위되어 참모전체가 포로가 되었다.

미우스강의 방어선만이 버텨주고 있었다.

홀리트파견군의 측면에서는 제1기갑군이 [뷔킹]장갑척탄병사단과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제기억으로는 아마 5SS였을 겁니다.)

함께 소련제 1방면군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으나 제 1기갑군과 란츠파견군과는 넓은 공백이 존재하였고

이 빈곳으로 포포프의 기갑군집단이 밀려들고 있었다.

포포프는 145대의 T-34를 선봉대로 진격시키고

267대의 각종전차를 결정타를 날리기 위한 예비병력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포포프의 공격은 어떻게 할 셈인가?"


"포포프의 기갑군은 잘 막아내고 있으나 소련 제6군이 밀려들 파블로그라드지역이 문제입니다.

하우저가 후퇴시킨 기갑군을 제가 사용할 수있게 해주십시오."


"안돼,그 부대는 하르코프 탈환전에 사용한다.애 있지도 않은 소련공격을 걱정하나!하르코프가 중요해!"

그러나 바로 다음날 소련의 제 6군이 진격하여 드니에프르강40마일까지 와있다는 보고를 받게 된 히틀러는  

하르코프로의 진격을 위해 숨겨놓았던

제3SS[토텐코프]사단까지 만슈타인 휘하로 인정하게 된다.

이보다 한 술 더떠 6개군을 방어하고 있는 허약한 미우스전선에서 가능한 모든 기갑사단을

북서쪽전투에 투입시키는 것도 승인하였다.

이미 소련 25전차군단이 홀리트파견군의 보급로를 끊어 놓았고

이제 히틀러와 소련 제 6군의 선봉대사이에는

아무런 장애물이 남아 있지 않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소련 전차가 10키로앞까지 진격했을 때 불안해진

총통은 만슈타인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고 황급히 떠났다.

만슈타인원수는 이제 성가신 간섭없이 마음대로 반격을 가할 수 있게 되었다.



6.제 6군의 원수를 갚자.

다행스럽게도 충분히 보충된 제 15보병사단이 프랑스에서 9일전에 도착해 있었다.

악천후로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령관을 대신하여 빌레머 중령은

"제 15보병사단이 탄 기차는 도착하는 대로 시넬니코보로 향한다."라는 명령을 내린다.
현상황에 대하여 가차안에서 브리핑이 이루어졌고 기차에 탄 그대로 역에 돌진한 제 88척탄병연대의

3개 중대는 잠자리에 있는 소련군들을 포로로 잡고 방어망을 구축했다.

추가병력과 대형화기를 실은 두번째 열차가 도착했다.

격심한 야간 전투를 벌인 끝에 이 마을을 탈환한 88연대는 적의 전차에 맞서 사수했다.

드니에프르강에 이르는 마지막 방어선을 지켜낸 것이었다.


시넬니코보로부터 77마일 동쪽의 크라스노아르메이스코예를

점령한 포포프의 기갑군집단은 도네츠강의 산업지역을 위협하였다.

[노틀란트],[게르마니아],[베스트란트]의 척탄병여단이

포포프의 선봉대를 봉쇄하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더 이상은 무리였다.


이 위험한 상황을 반전시킨 것은 뷔킹사단의 포병연대였다.

이 포병연대의 강력한 저항으로 자신들보다 우월한 독일전력을

상대하고 있다고 믿은 포포프는 더이상 남서방향으로 진격하는 것을 주저했다.

소련의 초기 공세를 막아낸 이제 만슈타인이 걱정한 위험한 상황은 이제 끝났다.

이제 도네츠와 드니에프르강사이에서 벌어지는 대역전의 드라마가 펼쳐지게 된다.

전사한 소련 제 663대공포부대는 연대소속의대위에게서 나온 독일군 패잔병을 소탕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는 소련군이 현재상황을 모르고 얼마나 맹목적으로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보급이 되지 않고 있다.탄약,음식은 물론 한 방울의 보드카도 일선에

도착하지 않고 있다.보드카는 패주하는 독일군을 추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뷔킹사단이 소련제4전차군단의 진출을 막고 제3기갑군,제7기갑사단등이 포위망을 형성하고

발크의 제11기갑사단이 포포프의 보급을 끊었으나

소련군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독일군 추격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독일측은 소련의 각종전신을 해독하여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반면

소련군은 제공권을 빼았긴 탓에 일선의 보고에만 의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독일기갑군의 이동도 남부집단군의 후퇴를 엄호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정도였으니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이었다.
기온이 급강하하면서 진흙길은 다시 얼어붙었고

이제 독일군의 최대장기인 전격전이 시작될 차례였다.

보급이 안되어 움직이지 못하는 기갑여단의 처리는

제333보병사단에 맡기고 각 기갑사단은 계속 이동하여

포포프의 기갑군집단을 케이크자르듯 잘라나갔다.


이제 포포프는 바투틴장군에게 후퇴를 애원했으나 바투틴의 대답은 단호했다.


"공격하라.적은 퇴각하고 있다.드니에프르로 도망가게 해서는 안된다.

당신이 멈추고 있는 것은 싸울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포포프를 제외한 모든 소련군 수뇌부가 승리에 눈이 멀어 있을 때,

만슈타인은 드니에프르강에서 방어전을 펼치고 있는 호트장군에게

소련 제 6군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호트는 자신의 휘하에 들어온 제 3개 군단을

소련 카리토노프장군의 제6군을 협공하기 위하여 이동시켰다.

북서쪽에서는 하우저 장군의 SS기갑군이,남서쪽에서는

제 28기갑군이 협공을 가해 파블로그라드에서 랑데뷰를 하도록 되어있었다.

전투는 1943년 2월 19일부터 시작되었다.

하우저의 SS장갑척탄병사단은 제6군의 측면을 깊숙히 파고들었고

제 4습격항공단의 슈투카들이 이들을 엄호하였다.

카리토노브의 3방위군단이 물러났고 15저격군단이 분산되었다.

파블로그라드의 철도중심은 독일군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노벨스도르프의 제28기갑군역시 파블로그라드에 파고들어

우수한 장비를 갖춘 소련 제 25기갑군단은 고립되고 말았다.

소련군은 계속 위험한 상황을 알렸으나 소련수뇌부는

독일정예사단들의 진격을 여전히 후퇴로써 착각할 뿐이었다.

이로써 가장 위험했던 적의 진격은 무산되었다.

체스게임에서와 같이 만슈타인은 자신의 말들을 우왕좌왕하는 적들사이로 움직였다.

포포프와 제6군에대한 공격을 위하여 분산시켰던 병력을 한데모아 도네츠강으로 진격시켰다.

몇대의 전차만이 남은 포포프의 군단은 북으로 후퇴하기 위하여 바투틴에게 애원을 했다.


하지만..


"모든것을 동원하여 적을 섬멸하라.그렇지 않으면 당신 혼자의 책임이다."

정말 어이없는 답변만을 받았을 뿐이었다.

결국 2월 24일 바투틴은 포포프와 제 6군의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결국 더 이상의 작전을 중지하고 하르코프와 미우스지역에 대한 공세를 부탁하게 된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독일제20기갑군이 포포프와 제1방면군의 마지막 거점을 청소하고 있었고

베를린 제 3기갑사단은 도네츠강서쪽까지 진격하고 있었다.


바투틴의 군대중 가장 강력했던 포포프기갑군은 전멸했다.

21일 간의 전투동안 포포프기갑군은

251대의 전차 ,125문의 대전차포,73문의 중포,

425대의 트럭,3000명의 전사자를 남겼다.


구원에 나선 제3전차군역시 제 4습격 항공단의 슈투카등에 의해 공격직전에 격멸되고 만다.

호트의 기갑군은 후퇴하는 소련 패잔병들을 청소하였다.

6개전차군단,10개의 저격사단,6개의 독립여단이 전멸하거나 큰 피해를 입었고

총615대의 전차,400문의 야포,600문의 대전차포가 격파되었고

23000명이 전사했고 100000명이상이 부상당했다.


그러나 독일군역시 포위망을 갖출 전력이 부족하였고

추운 날씨로 밤에는 마을에 머무른 덕분에 많은

소련군이 포위망을 탈출하고 포로는 6000명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만슈타인의 전략적 개가였다.

이로써 독일군의 전략적인 개가였다.

이로써 동부전선은 스탈린그라드 이전의 상황인 원점으로 돌아갔고

소련수뇌부에는 이악몽이 계속 따라다니게 된다.




7.제3차하르코프공방전

이제 남은 목표는 하르코프였다.

2월이후에는 동장군 못지않은 진흙장군이

찾아와 모든 이동을 중지시키는 것이 예사였으나

하늘은 이번에는 독일의 편을 들었다.

겨울이 계속된 것이다.

만슈타인은 하르코프를 향해 진격했다

.소련은 제 3전차군에서 2개전차군단과

3개저격사단을 빼내 하르코프를 방어하게 하였으나

소련군은 제1SS사단의 방어선과 SS기갑군의 진격로사이에

뛰어들어 무장친위대의 최정예3개사단의 포위망에 갇혀 전멸하고 만다.


하르코프남부에서는 샤파렌코중장의 제25방면저격사단이

제 28기갑군에 대항하여 5일간 버텨주었으나

소련 제 3전차군의 붕괴와 함께 장애물이

사라진 SS기갑군은 서쪽에서 포위망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제 3차하르코프공방전이 펼쳐지게 된다.

3월 10일 토텐코프와 아돌프히틀러사단이 북쪽에서 진입하기 시작했고

제 3대대,제 2SS장갑척탄병연대는 격렬한 시가전끝에 븕은 광장을 장악해 도심으로의 진입로를 텃다.

히틀러의 엄명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를 4주전에 포기했던 하우저는 이를 단 6일만에 탈환하고 만다.


하우저가 무모한 명령에 대항하여 구해냈던

SS패잔병들은 드니에프르강의 전격전에서 맹활약을

펼친 후에 그 여세를 몰아 하르코프에 다시 입성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후에 하우저는 너무 빨리 도심에 진입하여

시가전을 벌였기에 피해도 컸고

많은 소련군들이 탈출할 수 있게 했다는 비난을 사기도 하였다.



8.소련군 4개군이 전멸  

소련군 사령부에는 한결같이 예비사단을 요청하는 전화가 계속 울려왔다.

마지막으로 남은 카투코프의 제 1방몀군과 제 21군을 전선으로 투입한 바투틴은

제 3전차군에게 하르코프를 탈출하도록 명령을 하고 눈을 감고 싶었다.


6군은 전투불능,포포프의 기갑군은 전멸,

제 3전차군은 명목상의 사단이 되었고,제 69군도 전투불능에 빠졌다.


믿을 수없는 일이었다.거의 4개군이 괴멸되었다.

수십개의 사단과 여단은 어디로 패주했는지확인되지도 않고 있고

무려 52개사단과 여단이 사령부의 지도상에서만 존재하고 있는 것이었다.

독일군들이 계속 북진을 한다면 벨고로드와 쿠르스크는

함락될 것이며 중앙전선군집단의 5개군이 오히려 고립되고 말 것이었다.


스탈린은 무려 600마일떨어진

슈밀로프의 제 64군을 하르코프구원군으로 이동할 것을 명령했다.

이들은 스탈린그라드의 영웅이었지만 바로 다른 전투에 투입되기에는 힘든 사정이었다.


"제340저격사단의 사정은 어떤가?"


"12000명중 275명뿐입니다.사령관동지."


"기갑여단은?"


"단 한대의 전차도 없습니다.사령관동지."


이것이 바로 진격하는 SS기갑군과 라우스의 군단을 막아야 하는

제69군의 사정이었다.

3월18일 그로스 도이칠란드사단은

보로소브카를,SS기갑군은 밸고로드를 함락시켰다

.진흙장군이 오기전에 드니에프르강을 건너야 한다던

소련군이 이제는 진흙장군이 하루빨리 강림하기를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만슈타인은 히틀러에게 쿠르스크지역의 6개군을 협공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달락 요청했다.

그러나 중앙집단군의 폰크루거는 단호하게 지원을 거절했고

드디어 진흙장군이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결국

제4기갑군과 켐프파견군을 동원한 협공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히틀러가 주저하는 사이에 소련군은 절대절명의 순간을 모면하게 되었고

독일군은 중앙집단군과 다시 연결되어 도네츠강지역의 석탄은 다시 독일 산업지대로 보내졌다.

남부전선은 다시 원위치되었다.

만슈타인은 천재적인 전략으로 스탈린 그라드의 비극을 갚았으나

이미 이미 히틀러의 돌이킬 수없는 실수가 동부전선의 운명을 가르게 된다.

1943년 3월에 협공을 가하였으면 쿠르스크를 손쉽게 점령할 수 있었고

무려 6개군 전멸이라는 대수확을 거둘수도 있었으나 무려 111일 이후에

뒤늦게 쿠르스크작전을 실시함으로 귀중한 예비사단들을 전부 소비하고 만다.


이때의 전력 손실로 만슈타인조차 쿠르스크이후 계속되는 소련군의 공세를 막아내지 못하고 후퇴만을 거듭하게 된다.

또하나의 실수는 만슈타인이 요청했던 드니에프르강서쪽의 방어진지구축을 소흘히 했다는 것이었다.

히틀러는 그의 요청을 패배주의적 발상이라고 무시했으나 쿠르스크패전이후 드니에프르강을 간신히 넘은 남부집단군은

소련군의 융단포격에서 숨을 벙커하나 제대로 없는

,마지막 남은 이 천연의 장애물을 너무나도 어이없게 넘겨주고 루마니아까지 계속 후퇴만 하게 된다.....

『여담씨리즈』

"지금우리는 마지막생존자다... 우리는 트레일러에 갇혀 사흘째 굶고있다...
얼마있으면 적이들이닥칠것이다.. 우리는 마지막탄환을 장전하고있다.
내아버지에게 내가 싸우다 장렬히전사했다고 전해달라....
하일히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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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천수빈

2007.02.16 21:54:30

[4]는 욕이있다고 해서 봣더니 없어요ㅡ.ㅡ 근데도 안 올라와서 어쩔수없이 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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